11월 23일 관훈 갤러리. 오귀원 화백의 개인전 "여기에 있는 것과 저기에 있는 것" 그리고 십우도
오귀원 화백은 묻는다. 별이 안보이나요?
투명스럽게 답하는 나. 작가가 생각하시는 별이란 무엇인가요?
답이 아닌 물음.
"별이 안보이나봐요." 되풀이 된 답.
이때, 나는 쉽지 않은 인터뷰라 생각했다.
이미 작품들을 보고, 작가가 직접 가져온 작품 사진첩 세권을 흥미롭게 훝어 본 이후였다.
oharinth는 작품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작품을 찍고 있었는데 oharinth는 벽에 걸린 작품을 따로 찍고 있었다. 내가 보기는 바닥에 있는 작품과 그 작품은 한 작품이었는데 말이다. 사실, 작품의 제목은 모두 없었다. 그래서 분간은 힘들었을 것이다. 오귀원 작가께 다시 짧은 질문을 했다.
"이 작품, 한 작품이지요?"
내가 별을 보았다고 생각하셨는지 (아마도 이 질문이 "별이 안보이나봐요" 질문의 답이 되었는지) 내게로 오셔서 오귀원의 "별"에 대한 의미있는 답을 해주셨다.
oharinth와 나는 갤러리를 4개정도 돌고, 별다방에 갔다. 별이 있는 이곳에서 별이야기를 펼쳤다. 내 감상을 듣고 oharinth는 십우도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중 아홉번째 그림이야기.
반본환원이비공(返本還源已費功) 근원으로 돌아가 돌이켜 보니 온갖 노력을 기울였구나!
쟁여직하약맹롱(爭如直下若盲聾) 차라리 당장에 귀머거리나 장님 같은 것을,
암중불견암전물(庵中不見庵前物) 암자 속에 앉아 암자 밖 사물을 인지하지 않나니,
수자망망화자홍(水自茫茫花自紅) 물은 절로 아득하고 꽃은 절로 붉구나!
반본환원, 본래의 나로 돌아 온다. 작가가 말한 별은 꼭 밤하늘에만 있는 것이아니라는 말씀과 통했다. 우리네들은 별은 아름답고 반짝이는 귀한 것이다. 동경하게 하고 꿈을 꾸게 하는 것이다. 이와 십우도 첫 그림인 동자승이 소를 찾고자하는 마음과 같다. 동자승이 소를 찾듯이 우리는 우리들의 별을 만들고 별을 찾는다.
망우재인(忘牛存人:일곱번째 그림), 인우구망(人牛俱忘:여덟번째 그림). 소는 잊고 동자승만 있다. 그리고 결국 동자승 자신도 잊는다. 오귀원 작가도 이 과정을 겪었을 듯 하다.
작가는 우리네 삶안에서 귀한 별을 보았다. 그리고 보았던 별을 우리에게도 보여주었다. 이날 나는 작가 안에 반짝이는 별을 보았다. 소중하게 빛을 내고 있던 작가의 별은 별다방의 커피보다도 진하게 다가와주었다.
여기 커피한잔 안의 별과 저기 밤하늘의 별이 좋구나.
片. 2008.11.30.
'작가와 만남'에 해당되는 글 7건
- 2008/11/30 오귀원의 "별"과 십우도의 "소"
- 2008/11/23 여기에 있는 것과 저기에 있는 것 - 오귀원 화백
- 2008/11/02 잔인한가? 죽음인가? 외로움인가? 성스러움인가? 그대 박진홍 화가. (2)
- 2008/10/26 자유의 감옥 그리고 반젤리스 - 박진홍 화백
- 2008/10/26 순박함의 미학 - 조서정 화백
- 2008/10/12 원숙하게 익은 과실의 농염함 - 심윤진 화백
- 2008/10/12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심윤진 개인전
11월 관훈 갤러리.
오귀원 화백의 개인전.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투박한 사물에 별자리가 새겨진 것이 특이한 작품들이었다.
엮여진 낡은 나무판자들이 못과 철사로 엮여져 캔버스가 완성되었다.
나는 작가에게 물었다.
이 투박한 사물들에서 작가님은 별을 보신 건지, 어떤 의미로 별을 표현한 건지 물었다.
작가는 역시 예술가같은 답변을 주었다.
보는 사람 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라고.
평상시에 별을 동경하기 때문에 이런 작품을 만든 것이냐고 물었다.
그건 아니라고 했다.
지상의 나무판의 패인 홈을 하늘의 캔버스에 찍은 후, 실로 캔버스를 촘촘히 꼬매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지상의 나무판에도 별이 있고 하늘의 캔버스에도 별이 있고 그들은 서로 통하고 있다.
여기에 있는 것과 저기에 있는 것 - 이 갤러리의 제목이기도 하다.
패여진 상처.
별들 중에도 가장 빛나는 '초신성'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다음과 같은 분류를 해보았다.
여기에 있는 것 - (낡은 나무: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것)
저기에 있는 것 - (별: 반짝이는 것, 특별한 것).
동그랗게 모여진 별자리.
작가는 예전 작품에서는 '무너진 공든 탑'을 만든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있는 탑이다.
예전 작품이 별을 그리며 탑을 쌓다가 결국 닿을 수 없음에 좌절하고 무너진 탑을 표현한 것이라면, 이번 탑은 '별은 탑 안에 이미 있었다.'라는 깨달음을 얻고 서 있는 탑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낡은 나무판이 우리가 살아온 인생이라면, 못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상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 상처가 사실은 별이 되고, 별자리가 된다는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
낡은 나무조각, 쿠키 포장지와 같이 일상적이고 보잘 것 없는 사물에 반짝이는 별을 표현한 작품들을 음미하면서 작가의 신선한 시도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작가는 '시도'라는 말을 이쪽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평범함 속의 비범함.
우리가 찾는 것,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일깨워 주는 듯했다.
오귀원 화백의 시로 마무리를 지어 본다.
가까이 있는 것과 멀리 있는 것,
안에 있는 것과 밖에 있는 것,
가운데 있는 것과 구석에 있는 것,
지금 보고있는 것과 전에 본 것,
손에 잡히는 것과 마음 속에 있는 것,
남아 있는 것과 흩어지는 것,
그렇게
여기에 있는 것과 저기에 있는 것은
서로를 비춘다.
웅덩이 속에서 별로 반짝이고
한 줌 흙에서 은하로 흐르면서
사진 및 글 : 백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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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전혀슬프지 않다. 난 계산적이고 연민은 없다. 하지만, 내가 아프다. 당신이 아닌 내가.
어느 화창한 10월말의 일요일.
박진홍 화백의 관훈 갤러리 개인전.
박진홍 화백 작품과의 처음 느낌은 혼란스럽고 소름끼친다는 느낌이었다.
사람의 얼굴의 형상이지만 나이프로 긁혀진 붓자국이 형상 자체를 더욱 알아보기 힘들게 하였다.
하지만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는 순간, 작품은 깊은 심연, 신비스러운 색의 변화, 어두움, 고뇌, 허무, 마음 속 깊이 내재된 갈망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에게는 뭉크의 절규를 연상케 하였다.
박화백은 5년전에 산 속에서 2년동안 그림만을 그린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폐쇄된 공간에서의 작업에서는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대부분의 작품이 자화상을 의미하지만, 작가는 모든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그림 옆에 붙여진 제목 때문에 보는이가 작품에 집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무제"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은 이유는, "무제" 자체가 엄청난 제목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품에서 제목에 의해 편견이나 선입견이 생기는 것을 피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특별했고, 작품 자체에 몰입하도록 하는 순수한 작가정신이 느껴졌다.
작가는 세상에 대한 부조리를 느끼며, 작품에는 사회성이 담길 수 있다고 했다.
박화백은 작가들은 광대와도 같다고 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 처럼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모습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서 궁금증이 생겼다. 작가의 작품활동이 광대와 같은 것이라면, 그의 실제 내면은 작품과 다른 것인지 말이다.
실물 피아노위의 바이올린의 작품.
고풍스러운 피아노와 함께 바이올린을 든 사람의 형상이 더욱 깊이 있게 느껴진다.
또한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목재라는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뭔가를 사색하는 듯한 사람의 얼굴
그의 대학 시절의 작품이라고 했다.
작가는 보는 이들로부터, 이거 나무 위에다 그린 것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나무같은 느낌을 살려서 그렸다고 했다.
그가 후에 산 속에서 2년 동안 작업을 한 것, 세상에 대한 부조리, 그리고 자연에 대한 동경 같은 느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전시실 내에서 장중한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는데, 그 중에는 반젤리스의 음악이 있었다.
작품을 그릴 때도 그런 음악을 들으면서 그린다고 한다.
작품의 느낌과 비슷하게 비장하고 장엄한 음악이 시종일관 울려나오고 있었다.
작가는 초등학교 때 한 초상화를 보고 굉장한 충격과 감동을 받아서 그림을 그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아마 그의 작품의 대부분이 "자화상"인 것도 그런 영향이 아닐까 한다.
미카엘 엔데의 "자유의 감옥"이라는 작품을 인상깊게 읽었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심연, 신비, 어두움, 절망, 다양한 색의 조화, 복잡한 감정의 얽힘과 같은 다면적인 느낌을 받게 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작품이 어두움에서 다양한 색채를 시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자화상과 상반되게 이마 부근에서 밝은 광채를 느낄 수 있는 작품.
어둠에서 빛의 세계로 전환해가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그는 붓터치를 하고 칼로 긁어내고 이런 작업을 계속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작품과 자신이 소통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붓을 놓는다고 한다.
사진 및 글 : 백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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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정 화백은 이번 전시회에 소개된 두 작품은 초등학교 시절 교실 뒷편의 게시판에 사용된 녹색 부직포를 재료로 삼아 그렸다고 한다.
조금 특별한 재료로 그리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조화백은 전업작가는 아니며 본업은 주부이지만 틈날 때마다 작품을 만들 때마다 행복하게 만든다고 한다.
조화백은 동물을 즐겨 그리는 편이며, 가장 먼저 눈을 그려놓고 작품을 시작하신다.
눈이 완성되면 이미 작품이 반은 완성된 것이라고 하신다.
해바라기와 강아지.
화사한 가을 느낌이 나는 작품이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따뜻해진다.
물감으로 동양화 채색을 사용하였다.
작품에 반짝이 물감이 별처럼 박혀있어서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조서정 화백
사진 및 글 : 백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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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진 화백과의 만남
2008년 10월 어느 화창한 가을날...
인사동 갤러리 이즈에서 심윤진 화백님을 만났다.
고향
짙은 수묵화 같은 물감의 번짐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었다.
붓터치에서 고향의 푸근함을 느낄 수 있었고, 물감의 번짐효과 때문인지 아련한 고향의 추억 또는 꿈결 같은 몽환적인 느낌을 받았다.
화려하거나 많은 색상이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황토빛이 느껴지는 색상이 사용되었다.
위의 사진에는 반사의 그림자가 보이고 제대로 찍지를 못해서 원작의 느낌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게 아쉽다.
해바라기
주목할 만한 부분은은 해바라기들이 만발하다 못해 익어서 시들어 버린 것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심화백님은 인생의 모든 시절이 담겨 있는 그림이라고 설명을 해주셨다.
오른쪽의 키가 큰 해바라기는 힘차고 반항적인 20대의 삶을 의미하며, 왼쪽 아래 부분의 해바라기들은 중년의 삶을 의미한다고 하셨다.
오른쪽 상단의 4개의 직선과 왼쪽 하단의 굵은 직선은 산만하게 퍼져 있는 해바라기들의 구성에 직선적인 효과를 부여해준다고 설명하셨다.
약간 시든 듯한 모습의 해바라기들... 인생의 중년, 완숙함, 시듦과 죽음의 그림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흩어져있는 해바라기들의 모습이 인간 군상을 의미하는 고단한 인생의 냄새 같은 것이 느껴졌다.
靜白合
어두운 배경의 액자들. 과거의 추억을 의미하는 듯 하다.
그리고 그 어두움의 앞면을 감싸는 듯한 천자락 옆에 놓인 백합은 배경의 어두움과 대비되어, 화사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심화백 특유의 짙은 붓자국과 정감이 느껴진다.
꽃과 화병이 배치된 그림들
하지만 각 꽃들마다 색조와 개성이 매우 달라서 신선하고 새롭다.
[2] 은 차분한 느낌의 파랑과 하얀 느낌의 직선적인 구도에 잎사귀가 피어 생명력이 느껴진다.
線仙
설경
심화백의 작품은 잘 익은 과실처럼 짙고 농염한 색채와 따뜻한 정감을 담고 있었다.
사진 및 글 : 백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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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다듬어진 서명, "JENE"는 작가의 조심스러움, 겸손함을 말해주는 듯 하였다.
귤꼭지: 작가님! 두려우십니까?
작가: 네 두려워요. 윈스터 처칠경의 풍경화에도 사인이 없습니다. 자신있게 작가라고 말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귤꼭지 생각: 국민학교 1학년 바른생활 숙제는 정사각형 네모칸에 한글로 채워오기였습니다. 연필로 또각또각 썼었는데 연필쥠이 어색한 아이에게는 그 글씨들이 맘에 쏙 들었었습니다. 작가의 맘이 어린 초등학생의 글쓰는 맘입니까?
작품은 꼼꼼하고 정성다해 단장되어있었습니다.
(국민학교란 80년대에 초등학교를 말합니다. 바른생활은 국어로 바뀌었나요?)
꽃은 아름답고 아쉽습니다. 우리네 삶도 아름답지만 안타깝습니다.
작가: 60년이 길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나로써 살아가는 시기는 30년쯤 될 수 있겠습니까?
삶의 여정을 한폭에 담은 작품 해바라기 앞에서.
심윤진 작가의 소녀스러움 그리고 어르신.
투덜대는 귤꼭지에게 세상은 감사하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려주려 합니다. 그리기 시작은 어렵습니다. 긍정하고 밝은 한가운데 있어야 하니까요. 아름다운 시간은 하나의 점입니다. 길이가 없습니다. 짧다고 말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무려 네다섯 시간이 지나갔지만, 난 이미 내 앞에 작품안에 있었습니다.
작품명 아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글꼬리가 차분히 내맘안에 감겨왔습니다.
片.
전시회: 갤러리 이즈(구 학고재) 제2전시실(2F)
2008.10.8 - 10.14
바이올렛(60*60cm)
라넌큐러스(60*60cm)
썬바디(75*75cm)
꽃무리(75*75cm)
해바라기(162.2*130.3cm)
해바라기IV(30*60cm)
타임스퀘어(36*53cm)
작가의 마음가짐: 긍정적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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